지난 2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8회초를 마치고 KIA 양현종이 환호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8회초를 마치고 KIA 양현종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6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KIA 타이거즈의 선발 투수 양현종은 경기 도중 조금 독특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8회초 두산 타선을 삼자범퇴로 처리한 후 가족들이 앉아 있던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을 펼쳐 보인 양현종은 이내 양팔을 힘차게 들어 올리며 관중들의 환호를 유도했다. 양현종의 동작은 네 차례나 이어졌고 광주KIA챔피언스필드는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경기장 분위기만 보면 KIA가 끝내기 승리라도 한 거 같았다.

사실 선수들 간의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KBO리그의 문화를 생각하면 상대팀 두산 베어스에게 자극이 될 수도 있던 양현종의 행동은 다소 '오버'라고 생각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마운드는 내가 지킬 테니, 마음껏 타자들을 응원해 힘을 달라'는 의미로 홈 관중들에게 보낸 양현종의 '시그널'이었다. 그리고 KIA는 거짓말처럼 이어진 8회말 공격에서 결승점을 뽑아냈다.

퍼포먼스와 더불어 양현종이 이날 보여준 위력적인 구위와 승부근성은 1차전 패배로 침체돼 있던 KIA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다른 선수도 아닌 양현종이라면 KIA의 홈구장 챔피언스필드에서 충분히 그런 의사 표현을 할 자격이 있다. 양현종은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위기 이겨내고 '좌완 에이스'로 우뚝 서다

[기아 전지훈련] 오타니 맞대결 나선 양현종 기아 양현종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 에 선발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기아 양현종이 2016년 2월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 에 선발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이날 양현종은 일본의 오타니와 맞대결했다. ⓒ 유성호


광주 동성고 시절이던 2006년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의 우승멤버로 활약했고 2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지만 양현종은 입단 당시 엄청난 주목을 받진 못했다. 동기 중엔 고교시절부터 청소년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던 김광현(SK 와이번스)이 있었고 팀 내엔 동성고 1년 선배이기도 한 '10억팔' 한기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현종은 프로 입단 첫해 31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평균자책점 4.17에 그쳤고 김광현이 KBO리그를 지배한 2008년에도 5패 5홀드 5.83으로 부진하며 유망주 껍질을 벗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KIA의 투수코치로 부임한 간베 토시오 코치의 집중 지도를 받은 양현종은 프로 3년째가 되던 2009년 풀타임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12승 5패 1홀드 3.15를 기록, 타이거즈의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0년엔 16승을 올리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군필 15승 투수 양현종의 앞날에 화사한 꽃길이 펼쳐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양현종은 2년 동안 28승을 거두고도 KIA의 에이스로 인정받지 못했다. 팀에는 2011년 투수 4관왕과 정규리그 MVP에 오른 윤석민이 있었고 2011년부터 찾아온 어깨 부상도 양현종의 앞을 가로막았다. 실제로 양현종은 병역 면제 후 몸을 사린다는 비난을 듣기 싫어, 아픈 몸을 참고 던지다가 부상이 악화됐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동안 17승에 그쳤다. 류현진(LA다저스), 김광현과 함께 자주 언급되던 '좌완 트로이카'에도 양현종의 이름은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현종은 2014 시즌 16승 8패 평균 자책점 4.25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초대 최동원상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2015년에도 2년 연속 15승을 올리며 KIA의 확실한 좌완 에이스로 등극했다. 양현종은 리그 평균타율이 .280에 달할 정도로 타고투저의 바람이 불던 2015년 리그에서 유일하게 2점대 평균자책점(2.44)을 기록했다. 2010년 페어플레이상, 2014년 최동원상을 수상한 적은 있지만 양현종이 기록에 의한 개인 타이틀을 수상한 것은 프로 데뷔 후 처음이었다.

양현종은 FA자격 획득을 앞둔 작년 시즌 지독한 불운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생애 처음으로 200이닝을 넘기는 의미있는 시즌을 보냈다. 시즌이 끝난 후 양현종은 김광현, 차우찬(LG 트윈스)과 함께 FA 투수 최대어로 꼽혔다.

국내 어느 팀에 가더라도 100억 원 안팎의 몸값을 보장받을 수 있고 자유의 몸이 된 만큼 해외 진출의 꿈을 펼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현종은 특급 FA 선수로는 결코 흔치 않은, 조금은 특별한 선택을 했다.

KIA 잔류, 20승과 한국시리즈 완봉의 영광

 지난 2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1대0 완봉승을 이룬 KIA 양현종이 기뻐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1대0 완봉승을 이룬 KIA 양현종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현종은 작년 12월 20일, 1년 22억 5000만 원의 조건으로 KIA에 잔류했다. 최형우를 영입하고 나지완을 잔류시키면서 지출이 심했던 구단의 사정을 배려한 것이다. KBO리그에서는 선수가 FA권리를 행사하면 4년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KIA구단과 올 시즌이 끝난 후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는 옵션을 달았지만, 자칫 부상을 당하거나 시즌을 망쳐 버리면 야구인생이 완전히 꼬여 버릴 수도 있었다. 그만큼 양현종은 자신의 구위와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양현종의 올 시즌은 그야말로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 기관차' 같았다. 시즌 개막과 함께 7경기에서 7승을 거둔 양현종은 5월 중순부터 5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지 못하며 주춤했다. 하지만 다시 6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며 다승 선두 자리를 되찾았고 팀 동료 헥터 노에시와 꾸준하게 다승왕 경쟁을 벌였다. 결국 지난 2일 kt위즈와의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5.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21세기 최초의 토종 20승 투수에 등극했다.

양현종은 이미 지난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누린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KIA 마운드의 중심은 20대 초반의 양현종이 아닌 외국인 듀오 아킬리노 로페즈와 릭 구톰슨이었다. 실제로 양현종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에 등판했지만 1패 6.14로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젊은 유망주'가 아닌 '에이스'로서 8년 만에 맞는 한국시리즈가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1차전에서 헥터가 무너지면서 2차전 선발 양현종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통산 한국시리즈 2승, 평균자책점 1.10의 성적을 자랑하는 두산의 '빅게임 피처' 장원준. 물론 장원준도 7이닝 무실점으로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펼쳤지만 9이닝 4피안타 2볼넷 11탈삼진의 완봉 역투를 펼친 양현종을 당해낼 순 없었다. 침체될 수 있었던 팀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양현종의 122구 투혼은 더욱 가치가 있었다.

에이스는 단순히 개막전이나 시리즈의 첫 경기에 등판하는 투수라는 의미도 아니고 팀 내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투수를 의미하는 단어도 아니다. 단지 마운드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동료들과 팬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는 존재가 바로 에이스가 가진 힘이다. 그리고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KIA의 양현종은 야구에서 말하는 에이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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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한국시리즈 KIA 타이거즈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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